군산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은, 동네마다 숨어 있는 책방들을 따라 걷는 것이다
맛있는 것도 좋고, 일몰 명소나 근대문화유산 거리도 흥미롭지만 도시 여행의 진짜 백미는
동네를 천천히 걷는 시간에 있다
걸음이 느려질수록, 그 지역의 오래된 삶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지인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사색하며 걷는 여행은 역시 혼자일 때 가장 진하다.
군산 책방 여행에서 주차는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다
작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책방은 눈앞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나처럼 오래된 기록을 더듬고, 레트로 감성에 끌리는 여행자라면 이 도시의 책방들은 놓칠 수
없는 정서의 쉼터이다
군산을 걷다 보면 도심과 구도심이 혼재한 풍경 속에서 동네 책방이 제법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만큼 이 도시에는 자신의 삶과 도시를 아끼는 마음이 고요하게 스며 있는지도 모른다
책방은 그 도시의 말투를 닮아 있고 그곳 사람들의 정서를 가장 조용히 말해주는 공간이다
2024년 기준, 인구 25만 내외의 도시에서 5~6곳 이상의 동네 책방이 이렇게 밀도 있게 살아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군산의 책방들은, 여행보다 더 여행 같은 감정으로 다가온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을 둘러보다 보면, 월명동 골목 어귀에 조용히 숨어 있는 작은 적산가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파란 기와지붕, 나무 격자문, 평화로운 분위기…
그곳이 바로 많은 여행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마리서사’였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건 책도, 사람도 아닌 고양이 한 마리였다
군산까지 와서 고양이에게 환대를 받을 줄은 몰랐다
녀석은 몇 마디를 중얼거리듯 내게 건네고는 느릿하게 발에 머리를 비비며 마치 “어서 와”라는
듯한 인사를 건넸다
이내 문 앞에 앉아 다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은, 문을 열어달라는 건지… 순간 웃음이 났다
햇살 좋은 의자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는 지나가는 관광객의 손길에도 무심한 듯, 관대했다
책방 속 평화로움이 그 고양이에게도 스며든 듯했다
마리서사의 내부는 아담하지만, 책방지기의 세심한 큐레이션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나는 군산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속으로는 “바로 이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반가운 순간이었다
어느새 여행을 할 때면 그 지역 책방에서 지역 관련 책이 있는지를 먼저 묻는 습관이 생겼다
책을 통해 도시를 이해하고 싶어지는 것, 그게 동네책방의 매력이다
남향으로 난 창으로 오후 햇살이 천천히 들어오고, 그 빛은 책 등 위로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조용한 책방의 오후는, 희망차 보였다
참, 마리서사의 운영시간도 미리 알고 가면 좋다
월요일은 휴무이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일요일은 조금 이른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여유롭게 햇살 좋은 오후 시간에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푯말을 따라 도착한 곳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건 다소 의외의 모습이었다
북카페 정담
간판을 보며 잠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이 정말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맞을까?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그러자 책방 주인과 짧은 눈빛 교환이 오갔다
역사적 의미를 질문한 것뿐이지만, 순간 약간의 신경전이 흘렀다
아마도 그만큼 이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크셨기 때문이리라
알고 보니, 이곳은 1908년 지어진 ‘구 구산세관 창고’를 개조한 공간이었다
한 세기를 넘긴 오래된 적산가옥의 골격은 그대로 살리고, 그 위에 인문학과 커피의 향기를
덧입힌 곳
정담은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우선은 커피 한잔을 먹고 싶어서 두리번거리며 보았다
정담의 메뉴판을 보다가 눈에 띄는 이름 하나 ‘고종황제 커피’라니?
순간 고개가 갸웃해졌다
정말 고종황제가 이 커피를 즐겨 마셨던 걸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종황제가 특별히 애정했던 커피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던 시절은 외세에 둘러싸인 대한제국의 몰락, 그 안에서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한 시대의 쓸쓸한 고독과 사유를 마시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생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보다 상실감이 컸으리라 조심히
추측해 본다
내가 받은 커피 한잔에서도 그런 무게가 느껴졌다
첫 모금부터 묵직한 보디감이 입안에 오래 머물렀고, 그 뒤로 밀도 있게 퍼지는 여운이 조용히
입안을 감쌌다
중강 이상의 다크 로스팅, 기교보다는 한 시대의 감정을 담은 듯한 커피였다
나는 커피 전문가도 아니고, 평소에도 맛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리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커피는 분명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이지만 고종에게 커피를 처음 소개한 이는 앙투아네트 송(Antoinette Sontag)
이라는 독일계 러시아 여인이었다
그는 정동의 덕수궁에서 고종과 함께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고종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중일 때에도 커피 한 잔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지금 이 커피는 그런 역사적 순간을 조용히 복원해 보라는 작은 제안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종황제 커피는 고종의 기분을, 시대의 공기를, 그리고 여기에 갑자기 오게
된 여행객의 당혹감을 커피 한 잔에 담아보는 인문학적 상상을 자극한다
그리고—하나 더
묵직한 인문학의 향기를 뿜던 이 공간에서 분위기를 단박에 반전시키는 존재를 만났다
이름하여, ‘먹방이’ 인형!
오 마이갓.
세상 밝은 얼굴로 자리하고 있는 이 녀석 하나가 정담의 무게감 있는 분위기에 적당한 균형감을
선물해 주었다
근대문화유산 거리와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따라 걸으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었다
하지만 먹방이를 보는 순간, 마치 아무 말 없이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한 위로가 되었다
필자는 본래 조용하고 사색적인 편이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휩쓸려 우울해지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도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무게감에 잠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정담에서는 ‘먹방이’와 그 친구들의 캐릭터로 만든 귀여운 굿즈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먹거리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대담하고 멋진 인문학적 상상력은 어디서 온 걸까?
고종황제 커피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재해석, 먹방이라는 캐릭터로 인문학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각
요즘은 누구나 실용적인 분야에 주목한다
공학, 의학, IT… 더 뚜렷한 진로와 안정적인 수입이 약속되는 길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묻는다
“우리는 왜 이 시대를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인문학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정담은 사유와 감각이 공존하는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건 인문학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풍경이자, 새로운 시대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한 장면이었다.
정담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천장이 높아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특히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인문학 강연과 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벌써 90회가 넘었다고 하니 지역주민들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으로 정착하였다
깊은 생각과 감성을 나누고 싶은 이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북카페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인문학 창고, 정담의 운영시간도 참고하면 좋겠다
월요일은 정기 휴무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주말에는 조금 더 이른 오전 9시
30분에 문을 연다
주말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조용한 책장을 넘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군산에서 방문한 네 곳의 책방 중에서 가장 사랑받았으면 하는 곳은 말랭이
마을의 ‘봄날의 산책’이다
이곳은 버스 정류장과 다소 거리가 있고, 전용 주차장도 없으며,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 주민
우선으로 갓길 임시 주차만 가능하다
그래서 접근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곳만의 고요하고 소중한 분위기를
지켜주는 듯하다
내가 방문한 날, 마침 외벽 도색 작업이 한창이었다
페인트 양동이, 덧칠해지는 벽, 말라가는 색감, 그리고 주민의 생업을 이어주는 사다리까지
그 풍경 자체가 마을 사람들과 이 공간이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은 방 하나가 전부인 아담한 공간, 벽면의 나무 선반에는 아기자기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월명산이 보이는 창밖 풍경과 조용히 연결된 실내는 창가나 중앙 테이블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이다
봄날의 산책은 독특하게도 정규 직원이 없다
지역 주민과 지인, 이웃들이 번갈아가며 운영하는 공동 운영 방식이다
말랭이 마을 문화예술인 입주 공모로 시작해 13년간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봉사단을 이끌던 활동가가
레지던스 6호로 자리 잡은 공간이라 한다
운영자 모니카는 필명 혹은 닉네임일 뿐, 외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이다
알려주지 않으면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때론 미덕이 된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품고 있는 진짜 놀라움은 그 활동성에 있다
글쓰기 모임, 작가 강연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주최하며 단순한 책방을 넘어, 마을의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모아 글로 엮는 에세이를 출간하고, 출간 기념회까지 활발하게 열리며
지역과 깊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랭이 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쓴 꾸밈없는 시들이 벽면 곳곳에 적혀 있는데,
봄날의 산책이 바로 이 소박한 마을 이야기를 품고 이어가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날의 산책은 운영 요일부터가 더 정겹다
일주일 중 단 4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문을 연다
운영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마치 책방도 자신만의 속도로 숨을 고르며 열고 닫는 듯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그 책방의 호흡에 맞춰 찾아가면 더 좋을 듯하다.
책방 주인의 일정에 따라 간혹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방문 전 SNS나 연락처를 통해 확인하면 더 좋다
리루서점과 봄날의 산책처럼 지역의 작은 서점들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어느 정도 생계를 꾸려나가며
오래도록 자리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군산의 작은 골목, 말랭이 마을은 지금 조용히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한 권의 책과 한 잔의 커피가, 그리고 따스한 공간 하나가 사람들의 리듬을 바꾸는 나비효과가
되길 바라본다
리루서점은 왁자지껄한 경암동 철길마을의 활기와는 살짝 거리를 둔 곳에 있지만 특이하게도
기찻길 책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찻길에 있는 책방의 현황은 아래와 같다
신촌, 경의선 인근의 독립책방( Indie Bookstore)인 Mystery Union Bookstore가 신촌역
인근 기찻길 바로 옆에 있긴 하다
서점 이름에 걸맞게 미스터리 장르 중심의 큐레이션, 굿즈와 작가와의 만남 등 이벤트
중심의 공간이다
서울 홍대, 신촌 옛 경의선 철로 위에 조성된 공원 길의 치가 객차를 닮은 컨테이너 형태의 책방
6곳이 이어지는 곳이 있고, 인천에 오래된 철도 교량 아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1960년대부터
40년간 헌책방이 밀집했던 곳에 있다
리루서점은 셀카봉을 든 관광객들과 교복을 입은 언니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곳과는 달리,
도로 하나를 건너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작은 입구 너머로, 독립출판물과 창작 굿즈가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하지 않은 담백한 감성이 이 서점의 첫인상이다
규모는 작지만, 도시문화와 독립출판, 페미니즘에 집중한 선별된 책들이 높은 취향의 밀도를
보여준다
설명이 없어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자연스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관광지의
번잡함 속에서 한결같이 조용한 안식처 같은 서점으로 "혼자 있는 법"을 아는 서점이다
리루서점은 2022년 청년 창업과 문화기획의 연계 활동의 일환으로 창업하여 문을 열였고,
서점이자 독립출판물 출간을 위한 일일 책방지기 체험, 공간 대여등을 활성화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자치이야기 같은 프로그램과 협업하여 문화기획물로 역할을 수행하는 청소년.
청년과 함께 하는 활동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출판 및 북페어 등의 이벤트 기획 등 지역 문화 콘텐츠 생산자 역할도 하고 있다
리루서점의 운영시간은 비교적 여유롭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고,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연다
군산이 특별히 매력적인 여행지인 이유는 대도시의 치열한 경쟁과 바쁜 긴장감 대신, 지방
중소도시가 지닌 온기 어린 속도와 적당한 조용함에 있다
무엇보다도, 책방 주인들이 각자의 세계를 독립적으로 꾸릴 수 있는 환경과, 도시 전반에
퍼진 보존과 재활용의 가치가 느린 공간, 즉 책방과 참 잘 어울린다
개항과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상처, 산업도시로서의 쇠퇴와 그 속에서 맞닥뜨린 삶의
선택의 기로
그 모든 것이 모여 군산을 ‘근대 도시의 서사성’을 품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도시로 만든다
좋은 것은 모두 다 취하려 애쓰기보다, 다음을 기약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다음 군산 여행을 위해, 은파호수공원 근처 ‘사유의 집’과 서해대 근처 ‘문고리 책방’
투어는 아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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