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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원한 용필이형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 소개

by 긍정의 아이콘 2021. 12. 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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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에게 대한민국의 최고의 가수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글 제목을 우리의 영원한 용필이 형이라고 한 이유는 필자와 나이차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끊임 없이 자신을 갈고닦으면서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가왕의 자리에서

머물러 있는 조용필의 국민 애창곡이기도 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소개해 드릴까 해서이다.

 

이 노래는 1970년대 당시 재일교포들의 귀국이 많이 있었고, 특히 일본과 가까운 부산이나 경남

등지로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재일교포들이 많이 있었던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형제를 그리워하는 노래로 이해하면서 들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Come back to Busan harbor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Spring has come to the blooming Dongbaek island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Only seagulls are sad about Busan Port, where the brothers left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Whenever the line goes around Oryukdo island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My brother who never answers even if I'm choking him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Come back, my brothers who miss Busan Port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This street that I was choking up to go to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It was a long day's dream that I was lost because I missed you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Even those waves that don't talk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아섰지

I ran into him and was sad and blocked the way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I'm back, my brothers who miss Busan Port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조용필의 정식 데뷔곡이자 명곡이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1979년 발표된 음반으로 우리의 영원한 용필이 형의 목소리로 우선 들어보자

 

https://youtu.be/C64_G9Q2kBU

우리의 영원한 용필이형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어보자

 

다음으로는 아시아의 영원한 디바 및 대만이 낳은 최고의 가수로 필자의 등려군 노래 소개에

극찬을 늘어놓은 등려군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가져왔다.

 

등려군에 대한 얘기는 포털 검색이나 필자의 다른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일본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는 등려군과 조용필은 일본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듀엣

으로 노래를 부른 유튜브 영상도 본 적이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1980년대 일본 대중가요 역사상 30회의 Remake가 된 일본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는 곡이라 등려군 또한 커버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워낙 명곡이기도 하니 유행 따라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대만이 조국인 등려군의 환상적인 목소리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감상해 보자.

 

https://youtu.be/rngbLLRIhl0

일본 활동할 당시의 등려군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일본어로 감상해 보자

 

다음으로는 스페인 가수 Saul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인데 직접 부산항을 배경으로 한 촬영까지

한 정성과 이젠 마치 트로트는 스페인어 버전이 따로 생길듯한 분위기인 듯 K-POP을 커버한 노래가

유튜브에 많이 올라오고 있다.

 

스페인어로 들어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감상해 보자.

 

https://youtu.be/RCsaP8dMOK4

Saul이 부르는 스페인어로 또 다른 감동으로 들어보자

 

다음으로는 지금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일본의 최고가 엔카의 여왕으로 미소라 히바리를

꼽는 분들이 많이 있다.

 

1937년 05월 일본 요코하마 태생인 미소라 히바리는 일본 현대사의 전성기로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되기 전까지 쇼와시대의 가희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혹자는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에 버금가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고 칭하기도 한다.

 

1945년 8살의 나이에 어머니에 의해 이끌려 지방 공연을 다니고, 1947년 연예단을 태운 버스

사고 발생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을 부렸다고 전해진다.

 

1948년부터 카와다 하루히사와의 만남으로 전국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전해진다.

 

1962년 고바야시 아키라와 결혼을 하였으나, 2년 만에 이혼한 후 줄곧 독신을 유지했다고

전해지며 오빠의 아들을 양자로 입적하였다고 한다.

 

생전 마지막으로 불렀던 강물의 흐름처럼 이라는 노래는 NHK 일본의 명곡 1위에 올랐을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이건우 작사, 가수 이화숙의 인생이라는 번안곡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의 미소라 히바리의 생애는 1980년대 초부터 주변 지인들이

병으로 세상을 하나둘씩 떠나면서 술과 담배에 의존하기 시작하다가 1989년 06월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생전 무려 8,000만 장 이상의 누적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고, 장례식에는 5만 명이 운집하여

생중계로 TV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국계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고, 아리랑과 도라지타령까지 부른

적도 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미소라 히바리의 돌아와요 부산항을 들어보자.

 

https://youtu.be/zEUIepWKzCc

일본의 국민 가수로 불려진 미소리 히바리의 생전에 불렀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어보자

 

 

다음으로는 훌륭한 발성과 탄탄한 내공과 힘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 Aya Shimazu(시마츠 이야)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감상해 보자.

 

코미디언 오재미를 연상시키는 외모이기는 하지만 노래 전달력이 탁월하고, 시원한 목소리가

일품이다.

 

한국 가요인 가슴 아프게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시마츠 이야의 노래도 편견 없이 감상해 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https://youtu.be/tWTSZS0h-HY

훌륭한 발성과 탄탄한 내공이 느껴지는 힘있는 목소리의 시마츠 이야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감상해보자

 

마지막 영상은 왜 또 같은 동영상을 보여주는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곡의

탄생비화를 소개해 드릴까 해서 가져왔다.

 

돌아와요 부산항은 황선우 작사, 작곡을 되어 있는 노래인데 원 제목대로 작사, 작곡된 노래를

경상남도 충무(지금의 통영) 지역가수인 김성술(예명 김해일, 1946~1971)이 24살인 때 1970년에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먼저 발표를 하였다.


큰 인기는 끌지 못하였고 음률은 거의 비슷하나 다소 느린 곡으로 큰 인기를 끌진 못하였다.

 

 

 

김해일은 1971년 12월 서울 대연각호텔에 투숙하던 때 화재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유족들은 사고 이후 음반을 수거. 폐기하였으나, 이후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 에로 원곡의 작사

그대로 발표해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이면서 국민 애창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경남 통영시 서피랑 마을에는 故 김해일을 기리는 노래비가 제작되어 있다고 한다.

 

2004년 김성술(김해일)의 어머니는 작곡 겸 작사를 한 황선우를 상대로 가사 표절이라는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에서 유가족들의 손을 들어주어 양측의 합의.조정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부른 故 김해일의 음성으로 들어보자.

 

https://youtu.be/Z9R1qcWMwyo

돌아와요 부산항을 발표하기 전 김해일의 다소 느린 템포의 돌아와요 충무항의 원곡자의 노래를 감상해보자

 

이 곡을 부른 조용필의 이력을 쓸려니 다소 조심스럽긴 하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아이콘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고, 검색을 해보면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1950년 03월 경기도 화성 태생인 염전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경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음악을 시작했고,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가출까지 감행하는 등의

강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의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시대적 상황이 미 8군 무대에 서서 알려지기 시작하게

된다.

 

처음 1968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 및 가수로 출발하여 그룹 애트킨즈로부터 25시까지 결성

하여 밴드 활동을 하였다.

 

1973년 방위병으로 소집되어 군 복무를 하는 와중에도 저녁에는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1977년 대마초 사간에 연루되어 1979년까지 활동이 금지되기도 했던 조용필은 그때 이후 각성을

하면서 판소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시험과 음악적 접목을 시험하게 되면서  데뷔 초 미성이었던 조용필의 창법이 바뀌게 되었다.

 

조용필은 1979년의 정식 데뷔곡인 창밖의 여자를 필두로 그 겨울의 찻집, 고추잠자리,단발머리,

마도요, 모나리자, 못 찾겠다 꾀꼬리, 여행을 떠나요, 선구자, 킬리 만자로의 표범, Q, 일편단심

민들레야, 최근의 Bounce까지 대표적인 히트곡들이 있다.

 

57개의 앨범과 1,209곡의 음반 판매를 한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의 전설이다.

 

김정일의 애창곡으로도 알려진 허공은 대한민국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고, 중학생인 배우

김혜수가 출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10년대 차트 1위 곡을 가장 많이 보유 및 연말 가요 시상식

대상을 가장 많이 차지하기도 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연말 시상식에 가지 않겠다 선언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임에 틀림없다.

 

또한, 대한민국의 오빠부대의 원조이자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를 7번 및 2003, 2005년 우천 시

매진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아기공룡 둘리에 친구여라는 노래가 삽입되기도 하였다.

 

우리 귀에 익숙한 MBC FM 라디오 강석, 김헤영의 싱글벙글 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지 리스닝

음악의 대가인 폴 모리아 연주곡으로 편곡된 Please Return to pusan Post 음반도 청취자들은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한 것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문성재의 부산갈매기, 남인수 선생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세기의 명곡을 남긴 일본의 다니무라 신지를 비롯하여 미소라 히바리, 시마츠 이야, 마츠다 세이코,

덴도 요시미, 한국의 계은숙, 김연자 등이 리메이크하였다.

 

특이하게도 일본에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항구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린다는

내용으로 가사를 개사하여 불렀다.

 

부산항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한국어 그대로 사용하여 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이 되었다고

한다.

 

현대 YPC 프로덕션 대표로 있는 조용필은 모든 공연에 전속 밴드인 위대한 탄생과 함께 하고

있다.

 

지금도 운전을 할 때는 AFKN 팝송을 듣고, 브로노 마스, 마룬 5, 케이티 페리, BTS, 빅뱅등의 노래

또한 즐겨 듣는다고 한다.

 

록음악인 미지의 세계, 재즈풍의 단발머리, 트로트인 허공, 발라드 풍의 슬픈베아뜨리체와

우리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던 Bounce는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수 조용필이었기에 가능

했던 것이다.

 

 

 

1984년 국회의원의 딸이었던 박지숙 씨와 결혼하였으나 4년 만에 합의이혼 후 재산을 양도하며,

본인의 잘못이다라고 밝혔다.

 

1994년 미국 로비스트 출신의 안진현 씨와 재혼하였으나, 2003년 1월 투명 도중 사망하여 부인

으로부터 받은 24억을 비롯 그 이후 심장병 환자들을 위하여 기부한 금액이 비공식적으로는

100억이 넘는다는 설도 있다.

 

노래뿐만 아니라 국민들에 받은 사랑을 다시 되돌려 주는 마음 씀씀이가 인간적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상징과도 같은 가왕 조용필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명곡 탄생

비화와 함께 이 곡을 커버한 가수들의 노래와 함께 명곡이 발표된 이후에는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곡이라 생각된다.

 

그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감상해 보실 것을 적극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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